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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정

독락정

05독락정

독락정은 임난수 장군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부안으로 낙향하던 중 옛 양화리에 정착하였고 이성계가 여러번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끝까지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는데 1437년(세종 19년)에 그의 아들인 임목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킨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박물관 전경. 박물관의 전신인 금사분교는 마을 주민들이 땅을 희사하여 1935년에 '전의 보통학교 금사 간이학교' 설립인가를 받으면서부터 역사는 시작되었고 학생 수의 감소에 따라 1992년 3월 달성국교에 통폐합됨으로써 폐교된 건물이다.

정자 1동, 일각문(一覺門) 1동, 일각문 좌우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고대기단(高臺基壇)의 상단에 8각 고주형 초석을 세웠다. 초석의 높이는 1.3m이며 초석간의 거리는 2.5m이다

박물관 운동장에서 바라본 금사리 풍경. 민속관련 유물을 기증하겠다는 금사리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으로 유물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연기군민속박물관으로 개관을 하려하였으나 때마침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립민속박물관'으로 명칭을 정하고 문을 열었다.

독락정 일대는 독락정 역사공원으로 조성 중에 있으며 2016년 10월 완공 예정이다. 역사 공원에는 기존수림 보존 및 기존문화재 원형보존(토성, 임씨가묘, 독락정 등), 사라진 마을에 대한 향유 공간 조성, 이전문화재 배치(정려), 옛 토성에 대한 상징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책 읽는 소녀와 소년상. 반송소년 이승복, 사자상과 사슴상 등 옛날 초등학교 교정을 장식했던 추억의 조각상들이 남아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임난수(林蘭秀) 생애

임난수는 부안임씨 전서공파 시조로 1342년 전라도 보안현(현 전북 부안)에서 부친 임숙(林淑)과 모친 유씨(劉氏) 사이에서 출생하여 고려 공민왕 23년에 32세 나이로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웠다. * 정벌 중 적에게 오른쪽 팔이 잘리자 잘린 팔을 화살통에 꽂고 싸웠다는 유명한 일화가 현재까지 문중에 전해져 내려옴

고려시기 흥복도감(興福都監) 록사(錄事) 등 11관(官)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냈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여 관직을 버리고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현 연기군 남면 양화리)에 낙향하여 생활하다 1407년 6월 21일에 생애를 마감하였다. * 사후에 세종대왕은 기해년(1419년)에 임난수 사당(祠堂)에 ‘임씨가묘(林氏家廟)’라 선액하고 불천지위(不遷之位)로 모시도록 명하였음

책 읽는 소녀와 소년상. 반송소년 이승복, 사자상과 사슴상 등 옛날 초등학교 교정을 장식했던 추억의 조각상들이 남아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임난수(林蘭秀) 관련 유적

독락정(충남도 문화재자료 제264호)은 1437년 임난수의 둘째 아들인 임목(林穆)이 부친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와 임난수가 낙향하여 은거하면서 심었던 양화리 은행나무와 고려를 생각하며 고려수도인 개경을 향하여 무릎 꿇고 묵상에 잠긴 전월산의 상려암(想麗巖), 아침과 저녁에 개성을 향해 왕에게 예를 올린 부왕봉(俯王峰) 등이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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