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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려이유태역사공원

초려이유태역사공원

01초려 이유태 역사 공원

어진동 1-5복합커뮤니티센터 뒤에 위치한 역사공원 안에는 초려 이유태 선생과 아들, 손자 등 3대를 모신 묘역 동편에 전통기법을 사용한 강당·동재·서재 등의 목조건축물을 조성하였다.

  • 전화번호044-301-6565

내삼문을 통해 들어가면 왼쪽에 서재, 오른쪽에 동재가 있고 정면에 강당을 배치했다.

초려 이유태 역사 공원은 세종특별자치시의 역사 문화와 인문 예술의 심장이자 거점이며 특히 동양의 문화와 한국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의 실질적 생활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강연과 공연 등이 가능한 예술 공간으로 개방하여 현대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치유해가는 문화적 정신적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 전경. 박물관의 전신인 금사분교는 마을 주민들이 땅을 희사하여 1935년에 '전의 보통학교 금사 간이학교' 설립인가를 받으면서부터 역사는 시작되었고 학생 수의 감소에 따라 1992년 3월 달성국교에 통폐합됨으로써 폐교된 건물이다.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선생이 저술한 정훈(庭訓) 중 ‘거실지의(居室之儀)’에서는 그가 이상(理想)으로 삼고 있는 사대부 집안의 제택(第宅) 영조규범(營造規範)에 대해 소상히 기술하고 있다. 정훈은 그가 평안도 영변(寧邊)에 적거(謫居)하고 있던 71세 때 수년간의 유배생활로 인해 가사(家事)가 어려워지고 자손들이 배움의 기회를 잃게 되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저술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가옥의 전체적인 배치는 물론 각 건물의 구조 및 부재 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실용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박물관 운동장에서 바라본 금사리 풍경. 민속관련 유물을 기증하겠다는 금사리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으로 유물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연기군민속박물관으로 개관을 하려하였으나 때마침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립민속박물관'으로 명칭을 정하고 문을 열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초려 선생의 뜻을 단편적으로나마 계승 발전하고 그분의 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역사적 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추진한 이 곳은 진정한 선비의 삶을 살았던 초려 선생의 공덕을 기리는 의미도 담고 있다. 2013년 10월에 조성을 시작하여 2015년 4월 완공하였다. 총 면적은 23,700㎡이다.

책 읽는 소녀와 소년상. 반송소년 이승복, 사자상과 사슴상 등 옛날 초등학교 교정을 장식했던 추억의 조각상들이 남아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박물관의 상설전시관 입구. 오른쪽 복도는 특별전시실로 쓰인다.

신도비각

초려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는 원래 현 묘역 남쪽 약 100m 거리에 세워져 있었으나 새로운 묘역 조성과 개발공사로 인해 묘역 남쪽 도로 건너편에 이전하고 비각을 건립했다. 2m가 넘는 비신을 보호하기 위해 건립한 비각의 웅장한 모습이 마치 초려 선생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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