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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블로그 글의 상세내용
제목 세종 역사유적 답사 나리진 나루터 독락정
등록일 2019-05-29 15:06:28.0 조회 134
태그 [역사] [독락정] [여행]





'경제유고[敬齋遺稿] 권9[卷9]'에 따르면 공주[公州]의 동쪽 30리쯤 되는 삼기촌[三岐村]에는 독락정이 있는데,
남수문[南秀文]의 '독락정기[獨樂亭記]'에 의하면, 삼기촌에 살았던 임후[林侯]라는 이가
송대[宋代]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원명[園名]인 독락[獨樂]을 본떠서 이렇게 이름했다고 한다.

 

 
 



군데군데 모래톱이 생기고 물새들이 날아드는 금강을 따라 이어져 있는 학나래교, 한두리대교를 지나며
되살아나는 금강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들을 즐기며 자전거 길을 따라서 금남대교를 지나면
왼쪽의 금강과 면해있는 야트막한 봉우리에 자리하고 있는 독락정은 
세종시의 다양한 문화재와
유적지 중 하나로 
고려말 임난수 장군의 절개를 숭상하는 임씨가묘와 함께 나성동 독락정역사공원에 속해 있는데
 정자의 위치가 정말 멋진 경치를 감상하기에 너무 좋은 곳이랍니다.




금강스포츠공원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1킬로미터가량 걸어서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흙 경사 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는 길에 나리진 나루터 안내 팻말이 자리하고
이곳에서 50미터 가량 더 가면 임씨가묘와 독락정이 보인답니다.




그런데...
2017년 11월 처음 방문했을 때에도 발굴 작업을 한다고 온통 파헤쳐져 있었고 일부 통로를 차단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들어가지 못하도록[?] 임씨가묘를 비롯해 독락정으로 가는 길을 다 막아 버려서
오갈수도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만 문화재 발굴도 좋고 길을 막는 것도 좋은데
만일 한 사람이라도 찾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한 것 같더군요.




어렵게 수풀을 헤치고 저기 보이는 고지를 향해 혹시나 뱀이 나오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며 다가갔습니다.
^^




독락정 입구 왼쪽에 세워져 있는 풍상에 닳아 버린 글씨라 읽을 수가 없어서 뭔지 알 수없는 비석입니다




대문이 기울어져있어 위험해 보이는 독락정[獨樂亭]’은 말 그대로 보면
혼자 낙낙[樂樂]하는 정자란 뜻일텐데 앞서소개한
"송대[宋代]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원명[園名]인 독락[獨樂]을 본떠"서 지어진 이름이랍니다.


"'독락정기'에 의하면 임후라는 이는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를 지냈다고만 했을 뿐
그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 정자는 임난수 장군의 둘째 아들인 임목이 지은 것이랍니다.


세종[世宗] 때 충신[忠臣]의 표창과 나성리[羅成里] 강산[江山] 일원의 토지를 하사받은 임목은
 
나성리의 장원으로 낙향하여 부친 임난수 장군의 가묘[家廟]와 은거할 당시 

원정[園亭]을 지어 독락[獨樂]하다 숨을 거둔 임난수 장군의 절의를 지킨 뜻을 기리기 위하여
원정에 
정각[亭閣]을 짓고 ‘독락정’이라고 편액하였는데 
독락정은
금강팔경[錦江八景] 중 하나로 일컬어질 만큼 경관이 빼어나답니다.




세종의 자랑인 임난수 장군이 누굴까요?


임난수 장군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342년[충혜왕 복위 3] 전라북도 부안에서 임숙[林淑]의 아들로 태어나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과 혼인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1374년[공민왕 23] 최영[崔瑩]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 공을 세웠는데,
이때 적의 칼에 잘린 오른팔을 화살통에 넣은 채 계속 싸워
승리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그 용맹성은 대단했다 합니다.


흥복도감[興福都監]·녹사[錄事]·낭장[郎將]·호군[護軍] 등의 관직을 거쳐 공조전서[工曹典書]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이성계의 반란으로 멸망하자 조선에 출사하지 않고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다
1407년 사망하였는데 
이후 장군의 절개를 높이사 조선 조정에서 그의 충절을 기려
1419년[세종 1] '임씨가묘[林氏家廟]'의 편액을 내리고 불천지위[不遷之位;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로 받들도록 하였고
사패지[賜牌地 나라의 임금이 내려 준 땅]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1682년[숙종 8]에는 '고려임장군신도비[高麗林將軍神道碑]'가 세워지고
송시열[宋時烈]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기록한 비문을 쓰기도 했는데
독락정역사공원의 독락정 입구에 있는 부안임씨가묘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제4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임난수 장군의 네 아들 중 둘째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를 지낸
임목[林穆]이 1437년[세종 19년] 아버지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인 독락정은 
1984년 12월 29일 문화재자료 제264호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세종시에 편입되면서 세종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세월을 고스란히이고 있는 기둥이 원형이고 아래 석주는 팔각인 점은 눈여겨볼만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마루는 마루널 또는 청판이라고 하는 나무 널판을 짜넣어 이룬 바닥을 이야기하는데,
나무로 집을 지어 오던 우리나라에서는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
바닥을 지면으로부터 높게 설치하고 자유롭게 공기가 흐르게 하여 습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이용했죠




일반적으로 정자는 마루로만 만들어지는데 독락정의 특징 중 하나는 3면은 열려 있고 가운데에 방이 들어서 있다는 점이랍니다.


하지만 별도의 난방 시설이 없는 점을 들어 보면 겨울을 제외한 시기에 잠을 자는 공간이거나
정자에서 쓰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정도로 한철 이용하던 방이거나
뒤의 자유롭게 행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임씨가묘를 가리기 위한 방편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독락정에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하나는 독락정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독락정시랍니다.


독락정기는 성종 9년[1478년] 서거정이 지은 '동문선'에 남수문이 썼다고 수록했으며
서거정도 독락정에 관한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공주독락정[公州獨樂亭]'이라는 시가 전하고 있어 독락정시를 소개합니다.


少年聲價孰如君 [소년성가숙여군] 소년 시절의 명성과 값어치가 감히 누가 그대만 하겠는가

脚底平看萬里雲 [각저평간만리운] 발 아래 만리 길이 평지처럼 보이네

暫屈朝班還舊隱 [잠굴조반환구은] 잠시 조정 대신의 반열을 떠나 고향에서 은거하였으나

更從榮宦策高勳 [갱종영환책고훈] 다시 영광되게 벼슬을 얻고 높은 공훈에 책록 되었구나

功名造物眞如戲 [공명조물진여희] 공명이란 것이 진정 장난과 같으니

出處男兒未易論 [출처남아미이론] 사내대장부가 나갈 길은 함부로 평할 수 없는 것이라

却恐鳴騶催上道 [각공명추최상도] 다만 두려운 건 이름을 알리고 갈 길을 재촉하는 것

北山猿鶴更移文 [배산원학갱이문] 은둔 선비가 버리고 떠나며 글을 고처 씀이라

名園並壓錦江低 [명원병압금강저] 이름난 동산에 금강을 바라보며 자리했는데

我昔相尋路自迷 [아석상심로자미] 옛날 내가 찾던 길을 잃기도 했었지

何氏林亭知最勝 [하씨림정지최승] 하씨 임정이 가장 멋진 곳인 줄은 알았지만

杜陵桐葉不曾題 [두릉동엽불증제] 두보처럼 오동잎에 시를 쓰지는 못하였고

膏車恨未從盤谷 [고거한미종반곡] 수레바퀴에 기름 쳐 반곡에 들지 못함은 한스럽지만

雪艇終須訪剡溪 [설정종수방섬계] 눈 내리는 밤에 대규를 찾아가듯 독락정을 찾을 터

莫遣藏湍仍斂霧 [막견장단잉렴무] 부디 빠른 물길에 몸을 맡기니 안개처럼 가리지 마시오

似聞桃李已成蹊 [사문도리이성혜] 들으니 이미 도리 아래 절로 길이 나 있더이다






동서남북 어디서 보든 그다지 다른 모습은 아닌 독락정은 담을 넘어서 보는 경치가 정자의 목적과 잘 어우러집니다.




독락정의 북쪽에는 임씨가묘가 자리해 있고, 현재는 발굴 작업이 한창인 모습이 보이고,
북쪽 담장 아래로는 뭔가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며 
북동쪽으로는 전월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바위 끝에 알 수 없는 건축물이 반짝이며 눈길을 끕니다.





독락정의 정 동쪽에는 세종시청이 보이는데 그 물길 가운데 금강 보행교 공사가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동남방과 정남방향의 풍경이 지금은 사라진 나리진 나루터로 들고나는 배들을 보며
즐겼던 독락정 최고의 풍광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서쪽은 낮은 야산이 마주 보이는데 철마다 변하는 나무의 모습을 즐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홀로 서있어도, 무리를 지어도 어울림이 멋진 소나무가 독락정의 북쪽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혹시 염려되어 드리는 말인데 이글을 보고 독락정역사공원을 찾으려면
좀 더 기다려 나성동독락정역사공원이 완공된 후에 찾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글/사진 : 세종특별자치시 블로그기자단 [제7기] [조현화]
전자메일 : mhd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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